# type 두통

제목: 두통

3은 복잡한 숫자 계산을 힘들어 했다. 그가 숫자들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수학시간에 책에 적힌 공식을 외우기 싫어했다. 사실 수학과 숫자는 엄연히 다르지만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숫자까지 싫어하게 되었다.

그래서 숫자가 나오면 그냥 덮어버렸다. 시험 때 친구들이 고민하며 답안지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는 동안 그는 답안지 조차 작성하지 않았다. 수학 선생님은 그를 어떻게든 가르치려 했으나, 그것은 시간낭비라는 것을 깨닫게되었다. 3은 귀를 닫아 버렸고 그가 수업시간에 잠 자는 것을 아무도 막지 못했다. 수학 선생님은 같은 반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하기 싫어서 그를 놔둔 것 뿐이지만. 학교를 졸업 할 무렵 수학 선생님이 그를 조용히 불러 이야기했다. 

"자네는 커서 뭘하고 싶나? 하고 싶은 일도 있을텐데, 잠잘 시간에 그런 고민이라도 해보는게 어떻겠나?"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하고싶은 일을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저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자네가 무슨일을 하든 인내심을 가져보게.성실하기만 하면 무슨일을 하든 성공 할 수 있네.이게 내가 마지막으로 해주는 충고일세 "

3은 집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에 잠겼고, 그 후로 졸업할 때 까지 수학 시간에 잠자지 않았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을 뿐이다. 어떤 깨달음이 그를 변화시켰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졸음을 참았다. 오직 인내심 하나로 모든 지겨운 시간을 참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는데 번번히 취업에 실패했던 그는 1년 이상 직장을 구하느라 고생했다. 3씨는 그저 자신을 뽑아주기만 한다면 무슨일이든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좌절한 적도 많았지만, 그는 자신이 남과 다른 끈기가 있다고 믿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입사 시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9씨다. 그의 이력서는 형편 없었다. 9씨는 심지어 그를 멍청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그를 채용한 이유는 일 시키기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의 장점은 보는 사람 마다 다르지만, 9씨에겐 지겹고, 단순한 일을 꾸준히 처리하는 능력이었다. 머리가 좋으면 마음에 꾀가 생겨 게을러지고, 지겨워서 그만 두고 나간다. 그러면 사람을 다시 뽑아야한다. 결국 그는 끈기있게 물고 늘어지는 단순한 사람을 찾았다.  물론 그가 유능한 사람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3씨는 무엇보다 자신을 채용해준 9씨가 고마웠다.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9씨는 사소한 일들을 계속 시켜보며 그를 떠보았다. 짜증날 법도 한데 귀찮은 일들을 정성껏 자기 일이라 생각하고  처리해주는 모습에 9씨는 그를 믿고 많은 일을 맡겼다. 정말로 3씨는 귀찮고, 힘든 일을 누구보다 끈기 있게 처리했다.

결코 그는 꾀를 부리지 않았다. 일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좋은 방법을 고민했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9씨는 좋은 평가를 했다. 자연스럽게 9씨는 3씨와 가까워졌다. 다른 동료들도 그에게 많은 일을 맡기기 시작했고, 누가 봐도 사소하고 귀찮은 일들도 심지어 누구나 다 할 수있는 쉬운 일도 그가 처리하게 되었다. 

3씨는 언제나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해 일을 했다. 9씨가 어느날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렇게 말했다. 

"일을 맡길 사람이 없어. 믿을 사람이 자네 뿐이 없구먼."

듣기좋으라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제가 뭘요.... 일이니까  열심히 하는거죠"

"아니야. 내가 일을 많이 시켜봤는데 자네같이 열심히 하는 직원을 본적이 없었네,"

그는 뿌듯함을 느꼈고, 더욱 열심히 하기로 마음 먹었다.  결국 회사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모든 직원들이 그에게 많은 일을 맡겼다. 모르는 일은 집에가서 책을 보며 연구했다. 어떤 일이든 부딪혀서 해결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래 열심히만 하면 되는거야.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기 시작했어.

책상에는 한 가득 일이 쌓여갔고, 그는 만족스러웠다. 다른 동료들이 그의 책상으로 다가와 일을 부탁하는 것은 일상적인 모습이 되버렸다. 9씨는 어느 날 그를 불러 일을 하나 맡겼다.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하면 많은 대화가 필요없다. 버릇처럼 일을 맡기고는 눈치껏 일을 마무리하게되니까. 

일을 건네 받은 그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많은 양의 회계자료였다. 숫자들을 맞춰야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게 어떨까? 하고 고민했지만 그럴때마다 9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해야해. 안그러면 실망할 게 분명해. 나만이 할 수있는거야.

하지만 그는 두통 때문에 집중 할 수 없었다. 아침부터 신경이 예민해진 그는 잠시 옥상에 올라갔다. 머리가 아플 때면 옥상에 올라가 쉬었지만 두통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고, 점점 옥상에 머무는 시간이 길아졌다.  사무실의 사람들 중에 그의 변화를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옥상에서 보낸 그는 자리로 돌아와 일을 했다. 어느날 부터 그의 얼굴은 두통 때문에 일그러졌다. 자리에 앉아서 일만 하면 이상하게 다시 아파왔다.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픈 걸까? 그래. 맞아. 지하철에서 어떤 기침을 하던 여자에게 감기를 옮아 온게 분명해. 그래 그 여자의 기침 때문에 나까지 감기에 걸린거야. 몇일 쉬면 낫겠지.

그는 지하철을 떠올렸다. 지각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몸부림으로 질서없이 서로를 밀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도시의 모습이지만 매일 겪어야한다. 감기 환자라도 지하철에 타면 기침을 참느라 애를 먹고, 탁한 공기 때문에 재채기 라도 나오면 옆 사람들은 불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마찬가지 였다. 

예민해진 그는 아침마다 사람들의 등을 밀며 서둘러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귓가에 사람들의 발걸음소리가 어지럽게 들리고, 가슴 속이 뜨겁고 답답했다. 겨우 지하철 밖으로 나와 상쾌한 공기를 마시자 마음이 놓였다.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사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회사에는 일이 잔뜩 밀렸고, 9씨가 일의 진행상황을 물어보았다. 

"언제쯤 마무리되겠나? 급한일 아니니까 천천히 해도되네. "

9씨는 급한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회사일 중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은 없었다. 그는 급하게 다시 일에 매달렸다. 귓가에 맴도는 9씨의 말이 떠올랐다. 

일을 맡길 사람이 없어. 믿을 사람이 자네 뿐이 없구먼.

사람들이 모두 퇴근 한 뒤에도 남아 일하고 있었다. 잠시 물을 마시며 쉬어보지만, 의자에만 앉으면 두통이 심해졌다. 머리에서 열이 나는건지 손으로 만져봤지만 열은 없었다. 

도저히 이런 상태로는 일을 하기 어렵겠어. 내일 다시 처리하자. 

사무실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두통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9씨는 아침부터 그를 불렀다.

"언제쯤 마무리 되겠나? 이건 중요한 일인데.. "

그동안 여러 업무들을 잘 처리했던 그였지만. 숫자를 맞춰야하는 회계업무 만큼은 가장 힘들고 많은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계산이 정말 중요했다. 어려운 공식은 필요 없었지만, 모든 숫자가 정확하게 들어맞아야 했다. 쉴 새 없이 숫자에 매달리느라 책상에는 일이 쌓였지만 처리 할 수 없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숫자들을 하나씩 다시 맞춰보기 시작했다. 심호흡을 하고 잠시 눈을 감고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목을 주물러 보기도 하고, 어깨를 펴보기도 했다. 하지만 머리를 쥐어짜는 듯한 두통은 멈추지 않았다. 

"저 죄송합니다만.. 내일 처리하면 안될까요?"

"무슨일인가? 중요한 일인데."

실망스러운 9씨의 눈빛을 읽은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누군가 찾아와 또 일을 부탁하기 시작했다. 

"일이 많으신 것같아요.. 부탁좀 해도 될까요?"

무엇보다 이 일이 중요했다. 하지만 거절하기 어려웠다. 두통 때문에 좀 처럼 일이 풀리지 않았다. 우선 9씨의 일부터 처리해야했다. 그래. 저 일은 나중에 해야겠어.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었다. 이 일부터 먼저하고 도와 줘야지.

 

그는 부탁을 거절했다. 더 이상 그에게서 친절함은 찾아 볼 수 없었고, 표정은 어두웠다. 모든 일을 쌓아둔 채 저녁 까지 일했지만 마무리 할 수 없었다.

젠장. 머리만 안 아팠어도, 집중해서 할 수 있었을텐데. 집중이 되질 않아.

그는 더이상 두통 때문에 일을 할 수없었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그럴 수 가 있어요."

 "몰라요. 정말 너무하지않아요? " 

 "3씨가....."

 그는 머뭇거리다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해버리고 말았다. 자세히 들어보려고 귀를 세워 보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소리에 자세히 듣지 못했다. 자신에게 일을 부탁 했던 사람이 분명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까? 내 이야기를 한게 분명한데. 신경이 쓰였다.

그는 다음날 아침 일찍 부터 일을 하고 있었다.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 복잡한 숫자들을 오늘 꼭 처리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숫자는 틀리면 안된다. 1은 1이어야하고, 2는 2어야한다. 절대로 틀려서 안되는게 숫자다. 이 숫자를 저 숫자와 비교하고, 여기서 빠진것을 찾아보고, 이 숫자들을 더해서 이것과 곱하고 저 곳의 숫자와 맞아야하고. 하지만 맞지 않는다. 젠장.

그 순간이었다. 다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옥상에 가려했던 그는 자리에 털석 주저 앉고 말았다. 갑자기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찾으려 했는데 입에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 일이 없었는데!

결국 말을 하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고 눈물흘리고 있는 그를 발견한 사람은 바로 9씨다. 급하게 그를 병원으로 보냈다.

의식을 잃었던 그가 눈을 뜨자. 9씨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서야 눈을 떴구먼. 정신이 좀 들었나? 의사가 휴식이 필요하다고, 몸살이 심해서 그렇다고 하네. 안심하고 몇 일 푹 쉬게나."

그가 인사를 하려했지만, 입을 열수 없었다. 팔 다리의 감각도 없었고. 9씨의 말을 듣고나니 안심이 되었다. 

"나는 이만 가보겠네. " 

하지만 여전히 궁금했다. 어째서 아무 말도 할 수없는지. 왜 몸을 움직일 수없는지. 잠시후 회사 동료들이 하나 둘 찾아왔다. 아무 감각조차 느낄 수 없는 손을 잡아주고 위로의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자 회사에 두고온 일들이 떠올랐다. 오늘까지 처리해야하는 일이 많은데. 다른 사람에게 알려줘야 할텐데.  아무도 못할텐데. 그 귀찮고 힘든 일들을. 

몇일이 지났고, 그의 병상을 지키는 것은 오직 가족들 뿐이었다. 3씨의 두통은 점점 심해져갔고, 그가 할 수있는 것이라곤 눈물 흘리는 것 뿐이 없었다. 

머리가 폭발해버리겠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분명 조금만 쉬고 나면 나아질거라 했는데. 병원에서는 왜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거야. 일어나고 싶어. 머리가 어지럽단말야. 

3씨는 다시 일어날 수 없었다. 그의 가족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몇 일 뒤 그의 책상에 있던 일들은 여기저기 흩어졌고, 자리는 비워졌다.

9씨는 사무실에서 낮선 남자와 이야기 중이었다. 

"성실하게 일할 자신 있소?"

9씨는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남자는 그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대답했다.

"열심히 할 자신 있습니다."

자리를 일어나는 남자를 바라보던 그를 세워 다시 말을 걸었다.

"아참, 한가지 더..숫자 계산은 할 줄아나?"

남자는 자세를 갖추고 당황하며 말했다.

"어려운 계산인가요?"

 

"아니야. .간단한 거야."

남자는 질문의 내용을 곰곰히 생각하며 돌아갔고, 9씨는 쌓아둔 서류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남자를 다시 불러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을 맡길 사람이 없어. 믿을 사람이 자네 뿐이 없구먼."

끝.

# cd ..